국어국문학과

체/엄인옥

작은 들꽃 2013. 12. 21. 13:16

 

      엄인옥 쳇불에 그림자 하나 굴러간다 손 때 묻은 도드미 살 사이로 내리지 못한 메밀껍질 하나 붙어 간다 차고 서늘한 쭉정이가 모이는 곳 껍질 벗지 못해 켜켜이 쌓인 체기가 역류하듯 고운체가 슬그머니 돌아 앉아 가슴을 내린다 서걱서걱 메밀 분가루가 바람꽃으로 인다 뽀얀 화장을 덧칠하는 나무 이남박 닮은 얼굴 손끝에서 여린읗 같은 기억을 반죽하자 어레미 칸 사이로 그리움이 촘촘하게 모여 든다 메밀꽃이 달을 만나 스러지는 밤, 해마다 드는 기둥의 바람기를 거르지 못해 함지위에 쳇다리를 걸치고 체기를 거른다 울퉁불퉁한 부엌 바닥에 앉아, 어머니는 아카시아 가지를 툭툭 쳐 불을 땐다 금방 사그라지는 불꽃에 애벌구이를 올리고 땀방울 걸러 생을 반죽하던 어머니, 어머니가 메밀밭 가강귀를 돌아 종이 비행기를 타고 화전 밭으로 간다 뜯어진 쳇불을 메우던 뭉툭한 손끝이 도드미에 설렁설렁 거른 낱알을 받아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