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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프다. 그리고 나도 아프다

작은 들꽃 2019. 3. 16. 07:09

어머니는 아프다. 그리고 나도 아프다

농사일로 한창 바쁜 가을 어느 날 아침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늘 친정 어머니가 전화를 하시지 좀처럼 자식들한테 전화 하시지 않으시는 분이라 깜짝 놀랬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어요? 엄마가 편찮으세요?”

아버지는 잠시 머뭇하시더니

“그래, 엄마가 아프다,

“병원은요? 약은 드셨어요?

“병원은 갔다 왔고 약도 다 먹었다 올 거 니? ”

“올 거 면 볼일 보고 오후에 오너라”

 

나는 부랴부랴 하던 일 마치고 가방을 챙겨 들고 친정에 갔습니다.

대문 앞에 색이 바랜 낡은 풀라스틱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햇살 좋은 날에는  그 낡은 의자에 앉아 집앞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거 구경한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집에는 늘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며 과자가 있었습니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싸우거나 울면 사이좋게 잘 놀라고 한 개씩 준다고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맛있는 음식냄새가 났습니다.

근처에 사는 큰언니가 부엌에서 내다 보고 웃습니다.

언니 표정을 보니 집에 오는 내내 철렁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 앉았습니다.

 

우리 친정어머니의 연극 이제부터 보실까요~~

 

어머니는 아프다

우리 어머니

굽은 허리 힘들게 펴시면서

교자상 위에 상차림을 하신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

넘쳐나게 차려 놓으시고도

뭐 한 가지라도 빠졌을까

살피고 또 살피신다

 

땀에 절은 옷 벗고

물색 고운 옷으로 정갈하게 매무새 다듬다가

행여 밖의 소리 놓칠세라 TV 볼륨도

한껏 줄이고 귀 기울이신다

 

당신 아프다는 소식에 한 달음에 달려온

무심한 자식들은

가득한 상차림에 그만 눈시울이 젖어든다

 

어머니의 아프다는 소리는

바로 자식이 보고싶다는 소리인 걸

이제서야 알겠다.

 

제 마음은 이렇습니다

 

잊은 것은 아니랍니다

 

어머니,

당신를 찾지 못하는 이 마음 아시는지요

검버섯 무수한 골진 모습이 눈에 밟히고

물기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데

어찌 보고 싶고,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

 

오랫동안 같이 있지 못함이 죄스러워

돌아서는 발걸음은 늘 쇠사슬에 매인 듯 하였습니다

 

어디가 아프냐 전화 번호를 잊었느냐는 말에

뻔뻔스럽게도 바빴다고 말했습니다.

 

눈감고도 척척 누를 수 있는 전화번호

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들리는 목소리에 가슴이 저려와

차마

찾지 못하고 수화기만 만지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그렇게 기다리시던 전화를 드려도 뚜뚜 빈 신호음만 들립니다

자식들이 보고 싶어도 다녀가라는 말도 못하시고 걱정말라는 전화

가슴이 저립니다.

“아버지랑 나 잘 있다 걱정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