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정표/이재학
아차~ 벌써?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다
열심히 작업하고 힘겹게 달려오다 보니
창밖에 눈비 오고 낙엽 지는 것 도 모른 체
달력만 한장 한장 뜯어 낸거다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고
돌아보기엔 너무도 길고 긴 시간일지도 모른다
벌써~
그새 우리가 다음 해를 바라보면서
몇 수억 년 전부터 변하지 않은 저 태양의
멋진 자태를 안아주어야 하는건가?
한 섬 두 섬 내 어깨에 올려지는
숫자는 쉰셋으로
벌써~ 절반은 넘었지만
아직은 버틸만 하다.
그것이 볏섬이 되었던, 쌀가마니라 해도.
앞으로도 내등에 더 많은
인생의 높은 산이 얹어 진다 해도
내 앞에 주어진 삶 이라면......
벌써~
365일이란 한해가
시장 바닥에 뒹구는 배추 잎사귀처럼
무참하게 찢겨지면서 짓밟힌 몸으로
서산 넘어 떠나는 햇살 아래 떨면서
힘겨운 숨고르기 하건만,
저녁밥 짓는 초가집 굴뚝연기와 함께
그럭저럭 잘 익어가는 달랭이김치 맛이
잊혀질 수 없는 것처럼,
아쉬운 헤어짐을 서로 견디어내며
사랑해 온 그시간들도 이제는,
검정 비닐봉투에
아무렇게나 쳐넣어 쓰레기통에 버릴 때가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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