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처럼 호강을 하느라고 붉은 보에 싸인 채 고개만을 내민 암닭과 푸른 보에 싸인 장닭은, 답답하여 날개를 퍼득거리며 두 눈을 떼룩떼룩 굴린다.
장닭의 늘어진 벼슬이 흔들린다.
이제 초례청의 흥겨움은 막바지에 이른 것 같았다.
하객들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연신 화사한 농담을 던지며, 혹은 귀엣말을 소근거리기도 하면서, 감개어린 표정을 짓기도 한다.
비복들은 교자상을 서로 맞잡기도 하고, 혼자서 등에 메기도 하여 마당에 내다 놓고,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다시 뒤안이며 모퉁이, 행랑족으로 줄달음을 친다. 머슴들은 힐긋 곁눈질을 하고 지나치지만, 계집종과 아낙들은 그러는 중에도 잠깐 일손을 놓고, 사람들 어깨 너머로 힐끗 초례청을 넘겨다보며 한 마다씩 참견한다.
신랑의 상객으로 온 부친 이기채(李起埰)는 시종 가는 입술을 힘주어 다물고 아들의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체수가 작은데다가 깡마른 편이어서, 야무지고 단단한 대추씨 같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다문 입술과 더불어 날카롭게 빛나는 작은 눈에 예광이 형형하여 보는 이를 위압하는 것이었다.
그의 전신에는 담력이 서려 있었다.
얼핏, 놋재떨이 소리 같은 금속성이 느겨지는 사람이었다.
"거배애상호서상부하아(擧盃相互上婦下)."
서로 잔을 들어 신랑이 위로, 신부가 아래로 가게 바꾸시오.
허근의 소리가 다시 울린다. 이 순서야말로 조심스러운 것이고, 이제가지의 복잡하고 기나 긴 예식의 마지막 절차이다. 도한, 가장 예언적인 성격을 띠는 일이기도 하였다. 사람들도 이때만은 숨을 죽인다.
하님과 대반은 술상 위에 놓여 있는 표주박 잔을 챙긴다.
세번째 술잔은 표주박인 것이다. 원래 한 통이었던 것을 둘로 나눈,작고 앙징스러운 표주박의 손잡이에는 명주실 타래가 묶여 길게 드리워져 있다. 신랑쪽에는 푸른 실,신부 족에는 붉은 실이다. 그것은 가다가, 서로 그 끝을 정교하게 풀로 이어 붙여서 마치 한 타래 같았다.
이제 이렇게 각기 다른 꼬타리의 실끝이 서로 만나 이어져 하나로 되었듯이, 두 사람도 한 몫을 이루었으니, 부디부디 한평생 변치 말고 살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어려운 것은, 그 표주박에 가득 술을 부어 술잔을 서로 바꾸어 마셔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술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안된다. 또 실이 얽히거나 꼬여서는 더욱 안된다. 술방울을 흘리면 흘린 쪽의 마음이 새어 버리고, 실이 얽히면 앞날에 맺힌 일이 많아, 그만큼 고초가 심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하님과 대반은, 손에 힘을 잔득 주고 온 몸을 조심하며 술잔을 서로 바꾸는 것이다.
양쪽 상 위에 서리를 틀고 있는 청실 홍실은 구름 끼인 볕뉘 아래 요요히 빛나고 있다.
하님과 대반은 각기 신랑과 신부에게 표주박을 쥐어 준다.
"시이자아가악치임주우."
허근의 목소리는 고비에 이르렀다.
드디어 하님과 대반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긴장을 하고 조심을 하면, 일은 더욱 더디어지고 걸리기 마련인가. 아니면, 워낙 명주실이라는 것이 부드럽고 가늘어, 이리저리 옮기지 않아도 제 타래에서 제 실낱끼리라도 얽히는 것일까.
그만 실이 꼬이더니 얽히고 만 것이다.
츳!
허담이 혀를 찼다.
하이고오, 어쩌꼬오…….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소요가 일었다. 그 수런거림은 불길한 음향을 남겼다. 물론 작은 매듭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철렁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더 어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가느다란 실낱을 헤쳐가며 풀 수도 없으려니와, 그러다가는 표주박의 술마저 엎지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왕에 얽혀 버린 실을 풀어 내다가는 다음 일조차도 그르치게 된다. 허근의 얼굴이 어둡게 찌푸려진다. 그리고 낮은소리로 그냥 두라고 했다.
그래서 아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어깨를 움츠리며 잔을 나르는 대반의 코에 땀이 솟아난다.
아하아아.
하객 중의 한 사람이 탄성을 발했다. 술방울을 흘리지 않고 무사히 잔이 건네어진 모양이었다. 사람들도 저마다 비로소 숨을 튼다.
그리고 이제 점점 끝나가는 예식을 아쉬워하며, 신랑과 신부가 표주박의 술을 남기지 않고 한 번에 마시는지 어쩌는지,마지막 흥겨움과 긴장을 모으며 여기저기 한 마디씩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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