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만 잡시다."
강모는 얼결에 무엇인가를 털어 내는 듯한소로 말을 토했다.
그러지않고서는 이 침묵과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여겨졌는지도 모른다.
……신방에 들거든 우선 작은 주안상이 들어올 게다. 신부가 술을 따를 것이나 마시도록 해라. 신부 가슴을 먼저 만지면 유종(乳腫)을 앓게 되니 삼가야 하다. 그러니 화환을 먼저 조심해서 벗기고 머리 뒤에 큰댕기, 비녀에 앞댕기를 풀어 내려라. 그러고 나서는 활옷의 대대(大帶)를 끌러 주고 저고리는 옷고름만 풀어 주면 된다. 신부가 몹시 부끄러워할 것인즉 놀라게 하지는 말아라. 버선도 곁버선만 조금 잡아 당겨 주면 되느니.
강모는 부친의 당부를 떠올리며 신부 머리위에 얹힌 화관을 벗기려 하자 신부가 고개를 덜어뜨린다.
신부의 큰댕기는 참으로 장엄하도록 찬란하였다.
뒷등을 덮으며 방바닥까지 기다랗게 늘어뜨려진 검자줒빛 비단 댕기는 색색을 맞춘 비단실로 꽃송이 모양을 엮어 꾸미고 있고 자잘한 칠보(七寶) 꽃이 한바탕 화려하게 가장자리를 장식하였는데 석웅황(石雄黃)과 옥판(玉板), 밀화(密花), 그리고 금패(錦貝)의 매미 다섯마리가 앙징스럽게도 두 갈래 진 댕기의 가운데를 맞물고 있었다.
강모는 큰댕기까지만을 풀어 내리고는 손을 멈춘다.
더는 손이 가지 않는다.
뒤안 대밭에서 들리는 소리인가.
손이 멎은 방안의 정적을 일깨우기라도 하는듯, 댓잎을 씻는 바람소리가 솨아아 창호에 밀린다.
강모는 잠시 바람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신부를 그대로 두고 두 손을 올려 자기의 사모를 벗었다.
그것을 방바닥에 내려놓는 소리가 방안에 크게 울린다.
촛불이 자색 단령 자락의 바람에 펄럭 흔들리며 꺼질 듯하더니 검은 연기 한가닥만 그을음으로 오르다가 다시 고르게 자리를 잡는다.
그을음의 그림자
강모는 촛불을 내려다본다.
밀초의 투명한 미색 불꽃은 언저리에 푸른 서슬을 품으며 작은 새 혓바닥처럼 날렵하게 빛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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