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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을동비

얄미운 사람

 

얄미운 사람

                                                        박하꽃/임민자

 

 3 인실에서 7 인 병동으로 이사와 서먹서먹한 하루가 지났다. 각자 모인 일곱 사람들의 성격을 모르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여자가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환자들끼리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는 게 병실 인심이다. 그런데 그녀의 얌체 같은 행동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여러 사람 있는 병실에서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꾸역구역 잘도 먹는다. 하필 눈에 띄는 앞자리에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나이가 제일 많은 여자인 듯힌데 행동은 철부지다.

남들은 불편해도 병원 규칙에 따라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만 유독 붉은 냉장고 티를 하늘거리며 병실을 활보한다. 눈 만 뜨면 큰 덩치로 좁은 침대가 부서지도록 스트레칭을 한다. 그 뿐이랴 스트레칭 하면서 방구를 '북북...'속사포 쏘아대듯 한다. 입빠른 소리 잘하는 여자가

 

"언니 때문에 우리 방 식구들 얼굴이 누렇게 뜰 것 같네"

 

핀진을 주자 조심하더니 몸에 밴 버릇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생리 현상이지만 처음에도 뻔뻔 스럽게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공동생활에 어쩌면 작은 실수만 해도 쩔쩔매는데 그녀는 전혀 미안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둘러 말끔히 차려 입고 외출증을 끊어 교회로 갔다

 

그녀는 어제 딸이 병문안을 왔다. 딸은 양손에 도시락과 비닐 팩을 침대에 냐료 놓았다. 딸은 젊어서 그런지 엄머보다 세련되고 날씬했다. 그런데 하는 행동은 붕어빵이었다. 두 모녀는 손바닥만 한 도시락을 펴 놓고 종이컵에 음식을 덜어 먹었다. 작은 식탁에 둘이만 먹기에도 비좁은데 건성으로 병실 사람들에게 함께 먹ㅈ바고 권했다. 호ㅓㅏㄴ자들은  손바닥만한 도시락을 힐끗 보고 감히 어느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음식을 나누지 못하면 휴게실 가서 먹어도 될텐데 ... 턱 받치고 앉아 두 모녀는 볼이 터지도록 먹었다. 거기다 김밥 냄새가 솔솔 콧속울 간질여 침샘이 입안 가득 고였다.

  짐을 푼지 이틀만에 나는 신고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이상하게 그녀가 병실을 비울 때마다 먹을 게 생겼다. 얄밉지만 아이스크림 한 개를 그녀 몫으로 냉장고에 넣었다.

운동하고 들어오니 그녀 직장동료들이 면회를 왔다. 방울 토마토를 서넛이 희희낙낙거리면서 먹거 있었다. 여자들 셋은 조용한 병실이 떠나갈듯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차마 내색도 못하고 환자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슬슬 피해 나갔다. 이번에도 병문안 온 동료들이 과일을 사 온 듯했다. 그녀는 방울 토마토를 수북이 쌓아놓고 목으면서 병실사람들을 외면했다. 알사탕같은 토마토를 몇개씩주면 입안 텁텁할 때 좋을텐데... 마음속으로 너무 하다 싶었다.

 

그런 염원 탓인지 마침 아는 동생이 문병을 왔다. 집에서 재배한 어른 주먹만한 토마토를 한 아름 가지고 왔다. 나는 버란 듯이 병실에서 싱싱하고 먹음직한 토마토를 한 개 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믹으로 그녀 앞으로 갔다.

 

" 토마토 드시고 계셔서 안 드릴게요."

 

방울 토마토를 입에 문채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준 토마토를 입밋 다셔가며 사람들은 맛있게 먹었다. 먹는 소리만 들어도 십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 간 것 같았다.

 

이튼날이었다. 창가  쪽 여자가 아침부터 퇴원한다고 부산을 떤다. 그녀는 퇴원하면서 냉장고 옆자라가 불편하다며 옮기라고 했다. 병실 문만 열리면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 밖에서 훤히 보였다. 냉장고를 열때마다 역한 반찬냄새와 수시로 여닫는 소리에 여간 신경이 쓰였다.

병실에 온지 사흘 밖에 안된 나로서 예의 지킨다고 같은 날 병실을 옮긴 그녀에게 물어봤다. 혹시나 물어 본 것이 그녀에게 빌미를 주고 말았다.

 

"구석자리가 더워서 내가 갈거야"

 

물어 본 내가 어리석었다. 기다렸다는 듯 당연히 받아들이자 당혹스러웠다.그동안 그녀에게 쌓였던 말을 입 밖으로 내밷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래! 내 집도 아닌데 실컨 배가 터지도록 욕심부려라' 그렇게라도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니 화가 좀 풀렸다.

 

아침 회진 시간이 되었다. 침대가 부서지도록 스트레칭을 하던 그녀가 갑자가 어지럽다고 일어나지 못했다. 간허사가 혈압기 들고 급히 쫒아왔다. 회진 돌던 의사도 다른 곳을 제치고 다녀갔다. 욕심 낞은 그녀는 청가 쪽으로 이사 가려고 비척대며 걸었다. 병실사림들은 눈에 가시 같아도 짐은 옮겨 주었다.

 

그녀는 한 나절을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평소에 하는 짓마다 얄미웠다.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 있는 걸 보니 고소하기는 커녕 안타까웠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어제 먹다 남은 토마토를 꺼냈다.

 

"토마토 먹고 얼른 일어나요"

 

깨끗이 씻은 토마토를 내밀었다. 고개를 들고 웃는 곰탱이 같은 그녀, 가까이 보니 복스러운 구석도 있었다.

 

그 뒤로 그녀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문병 때 들고 온 탐스런 포도를 병실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내놓았다. 식사때마다 남의 음식을 탐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가 가장 아껴 먹던 된장에 박은 아삭이 고추를 식사 때마다 서슴없이 나누어 줬다.

 

그녀의 욕심꾸러기 해가 오늘 아침 서쪽에서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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